동서양 구별의 출발은 동양과 서양에서 보는 구별기준이 각각 달랐다. 중국인의 지리적 지식의 확대와 서양인의 아시아 진출에 따라서, 동서양간의 상호교류를 통한 인식의 변화를 거치면서 동서양의 구분 개념 역시 역사적으로 변화했다. 현재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동서양의 구분은 서양 중심의 세계관 편성과 아울러서 서양 중심적인 사상이 많이 반영이 되었으며, 동서양을 한 쪽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이분법적사고와 편향되고 왜곡된 인식을 불러 일으켰다. 서양에서 동양을 하나의 연구대상으로 보면서 시작된 학문인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인식하고 이미지 부여단계로 점층 되면서 점차 왜곡된 시각을 보이며, 서양의 관점에서 출발한 이런 왜곡된 가치관은 현재까지도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1) 동서양 구분 시각의 출발

① 동양에서 시작된 동서양의 구분

중국인이 남해(南海)에 대한 지식이 한층 깊어졌던 송(宋)나라말~원(元)나라초(13세기)에 생겨난 것으로, 당시 중국의 선박이 항상 왕래하고 있었던 대략 북위 16°이남의 남(南)인도 연안지방에 있는 몇 개의 소국(小國)을 가리켜 말한 것에서 비롯한다. 중국인들은 남해로 갈 때 무역풍을 이용했는데, 그들은 이 바람의 방향이 동서쪽으로 치우친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겨울에는 정북풍(正北風), 여름에는 정남풍(正南風)이 분다고 믿었다. 따라서 취안저우[泉州] 또는 광저우[廣州]를 기점으로 보고, 수마트라섬 동부를 이 바람의 종점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여 양자를 잇는 선의 동쪽에 있는 바다를 동남해(東南海), 서쪽에 있는 바다를 서남해라 부르고 구별하였다.

이 구분은 송대(宋代)부터 등장하는데, 원대(元代)에서는 공통되는 ‘남’자를 생략하고 해(海)를 양(洋)으로 바꾸어 동남해를 동양, 서남해를 서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당시의 ‘동양’에는 자바도 포함되었는데, 명대(明代)에 이르러 자바는 서양에 포함되었다. 이는 방위의 관념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며, 아마 유럽 지리학의 영향을 받아 광둥[廣東]의 정남(正南)쪽이 보르네오섬 북해안의 문래국(文萊國)에 해당한다는 것이 알려지고, 광둥~문래를 잇는 선으로 동양 ·서양을 구별하게 된 결과였다고 하겠다.

한편, 그 무렵에 중국에 건너간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은 세계지도를 한자로 설명하여 서부 인도양을 소서양(小西洋)이라 하고, 유럽 서쪽의 바다를 대서양(大西洋)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을 대서양 제국(諸國)의 사람들, 곧 대서양인이라 자칭하였다. 이때부터 서양은 유럽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으며 서양을 태서(泰西)라고 한것은 극서(極西)를 뜻한다. 그 후 서양은 더 줄여져서 양(洋)이 되었으며, 양품(洋品)은 서양상품, 양행(洋行)은 이를 취급하는 상점을 뜻하였다.

② 서양에서 시작된 동서양(엄밀히 말하면 오리엔트Orient와 옥시던트Occident)의 구분

서양에서 시작된 동서양의 구분은 서양이 인도,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존재를 알기전까지는 유럽문명과 중동아시아권 문명을 구분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아테네, 스파르타를 위시한 도시국가들)와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문명충돌의 시작점이다. 그리스인들은 지중해의 동쪽에 있는 페르시아지역을 해가 뜨는 방향, 즉 동쪽지방이란 뜻의 '오리엔트'라 불렀다. 이것이 서양이 동양 인식의 출발점이며 오리엔트라는 명칭은 이후에도 범위가 확대되면서 후에 동양(東洋)과 같은 의미로 굳혀지게 된다.

그리스는 서양-유럽문명권의 뿌리가 되었고, 페르시아는 유럽문명과는 구별되는 이슬람문명권으로 발전했다. 이후 중세를 거치고 15,16세기의 서양인에 의한 신대륙과 인도,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발견을 이끈 대항해시대를 맞이하면서 동양의 범위는 점차 확대되어 간다. 이때부터 인도, 중국, 동북아시아가 모두 동양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다. 지금의 의미로 동양이 영어 '오리엔트(Orient)'의 번역어로써 자리잡게 된 것은 실제로 서양인의 아시아 진출 이후이다.

서양인의 측면에서 동양의 범위가 확대되어가는 과정에서 동양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어갔는데 초기 동서양간 문화적, 정치적 충돌, 전쟁으로 인해 동양이 야만적이고 호전적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었고 제국주의시대의 중국과 인도를 침략으로 함으로써 동양을 낙후되고 후진적이라는 인식이 더해졌다. 이후 세계사의 흐름이 서양이 중심이 되고 세계사가 서양의 관점을 중심으로 서술되면서 이런 왜곡된 인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에까지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되었다.

 

2. 오랜 기간을 거쳐 형성된 편견. 오리엔탈리즘

앞서서 언급했듯이 오리엔트의 시작은 페르시아를 지칭한 말이었다. 페르시아는 페르시아의 영토에 속해있던 이오이아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그 배후가 이오니아와 인접한 아테네가 지원하고 있음을 알고 그리스 원정을 시작한다. 이 페르시아 전쟁은 동서양 문명의 최초 충돌로 인식되고 있고, 이는 동 서양이 서로를 인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 3차에 거친 대규모 원정은 그리스인에게 오리엔트가 전제국이며 야만적이라는 오리엔트관을 심어주게 된다. 그후 서양에 기독교가 존재할 무렵, 지중해에 가장 근접해 있던 동양 세력의 중심은 이슬람 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로마 제국은 천년의 역사를 이슬람세력에게 내주고 만다.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자부하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자연히 유럽인들은 이슬람세력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고 폭력적이며 호전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자연히 페르시아 제국에의해 형성되었던 야만적이라는 이미지에 더해져 폭력, 호전적이며 야만인의 무리라는 오리엔트관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인식이 나중에 가서는 후진적이라는 이미지까지 더해져서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이 후진적이고 개혁해야할 대상이라고 인식된다. 이에 이런 오리엔탈리즘 가치관을 바탕으로 16세기 프란시스코 드 비토리아 신부는 로마시대의 만민법을 인용하여 서양의 동양 정복이 “사회와 자연적 교통의 진리”라고 내세우면서 기독교 교리에서 허용되지 않았던 제국주의 시대의 아시아 정복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우월한 서양인이 동양인을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오리엔탈리즘적 가치관은 여러 군데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역사가의 저술에 의해서 서양문명이 을 옅 볼수 있는 구절이 많다.

· 인종과 문명에는 서열이 있으며 우리는 우월한 인종과 문명에 속한다는 것. 그리고 우월성이 권리도 주지만 거기에 따른 엄격한 의무도 준다는 사실을 원칙과 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토착민의 정복을 합리화하는 것은 우리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이다. 우리들의 위엄은 바로 그 특성에 달렸으며, 이것은 다른 인간들을 지도하는 우리의 권리를 강조한다. 물질적인 힘이란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 프랑스 역사가, 쥘 아르망

· 영국은 인도에서 이중의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하나는 파괴의 사명이고, 또 하나는 재생의 사명이다. - 낡은 아시아 사회를 파멸시키는 것과 그리고 서양 사회의 물질적 기초를 아시아에 심는 것. - 마르크스

 

우리는 아시아를 이해하지 못하며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영국 역사가, 존 빈센트 1990

이와 같이 서양은 동양을 개혁해야할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철저히 자신들의 시각으로 문화의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고 우월성에 사로잡혀 동양인을 자신보다 낮은 인종들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이러한 시각들을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부터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어오면서 서양문명을 선진문명으로 보고 받아들이고 서양문명을 따라가는 발전을 해야 한다고 보는 기존 오리엔탈리즘적인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많은 곳에서 점점 이러한 서양문명중심의 세계관과 인식에 대한 비판이 늘어 가고 있어서 그런 인식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일은 사라지고 있지만 깊은 내면에서 아직까지 오리엔탈리즘의 사고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미디어에서 이러한 인식들이 내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외국 영화소재에서도 연약하고 피해자의 역할은 동양 여자로 설정이 되거나, 세계평화 질서를 해치는 대 테러집단은 주로 동양인이다. 그리고 또한 서양에서 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도 서양을 우월하게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한 예로 얼마 전에 기존 이미지에서 고급브랜드로의 탈바꿈을 시도하는 S사의 이미지마케팅 광고에서도 기존의 유명 한국인 모델들을 교체하고 백인모델을 기용했다. 여기서 왜 꼭 한국의 유명한 연예인들을 교체하고 백인모델들을 기용해야 했을까? 이런 점도 백인의 우월성을 은연중에 인정하며 고급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백인우월주의의 오리엔탈리즘 적 가치관은 인종차별을 낳고 아직까지도 많은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세상 모든 살색이 모여 이루어졌다는 미국에서 조차도 유색인종 차별에 관한 갈등이 아직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조차도 유색인종의 노동력착취 문제 등 과거부터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서양시각에서 이슬람세계의 폭력적이고 극단적이라는 이미지로 생각하고 배척하며 문화의 다원성을 존중하고 이해를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근래에까지도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예로 9.11대테러가 있다.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존재해왔던 갈등은 드러나고 이런 표면에서 요동을 치는 이러한 갈등의 악순환은 뿌리 깊게 내제되어있는 오리엔탈리즘 적 사고를 끊어내지 않는다면 계속될 것이다. 또한 세계의 흐름이, 특히 경제 질서가 서양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동안 뒤늦게 이 흐름에 편승한 동양권은 자신들조차도 서구사회가 우월함을 은연중에 인정하면서 가치관이 서구중심으로 편향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은 세계가 이른바 지구촌화되면서 정보교환의 거리가 좁아지면서 서구중심사회가 아닌 글로벌화라는 시각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동양이 세계 흐름에 동참한 다기 보다는 서구사회를 따라잡기 식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개발중심의 경제체제에서 더더욱 드러난다. 동양이 세계 흐름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하기위해서는 서구중심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서 각자 자신의 중심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3) 리처드 에반스 <<역사학을 위한 변론>>1965 p9

(2) 에드워드 사이드. <<문화와 제국주의>> 1993 p.67


 
2년~3년전 과제, 영화 소재에서 동양 여자 이야기는 구체적인 사례를 넣었으면 했었음. s사의 이미지 마케팅은 직접 보고 쓴것인데 그 당시에는 누구나 알지만 지금은 어떤 광고였는지 기억이 안남. 
2번 출처 문화와 제국주의에 부정적으로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내용이 잘 나와있었던 것으로 기억. 
책 내용 역시 바른 오리엔탈리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나와있음.  
짧은 분량임에도 교수님께서 칭찬 해주셨던걸로 기억함.
좀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아는 분야가 많았으면 쓸 내용이 많았을텐데 수업을 했음에도 쓰기에 적합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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